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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과 율법과 복음

2010.12.27 17:42

admin 조회 수:1645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태복음 5장 17절)..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즉 어찌 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로마서 6장 14, 15절).  

  율법이란 무엇이며, 복음은 무엇입니까? 율법은 세상 법률과 하나님의 법을 구별하기 위한 명칭으로, 성경상의 하나님의 법, 곧 십계명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복음(福音)은 한자의 뜻 그대로 ‘복된 소리’ 또는 ‘좋은 소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인류가 공로 없이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기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율법 
  먼저 법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법이 왜 필요할까요? 오늘날 우리는 신문지상에서 매일 같이 교통사고에 대한 기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사고가 자주 일어납니까? 교통 규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통 규칙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합니다. 교통 규칙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법이 사람을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세상 어느 나라나 법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법 없이는 나라가 잘 다스려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류가 행복하고 평안히 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율법을 제정하시고 그 율법의 정신에 따라 살도록 마련하셨습니다. 그런데 법이란 그 제정자의 정신을 나타냅니다. 세상 법은 세상 정치가의 정신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정신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불완전한 사람의 법은 한번 제정했더라도 실제로 응용해 보면 모순도 있고 결함도 발견되므로 오래지 않아 뜯어고치기도 하고 폐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십계명은 완전하신 분이 제정하신 것이므로 모순이나 결점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일점 일획이라도 폐하지 않고 영원히 성취되어야 할 사랑의 법칙입니다. 이 사랑의 법칙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를 탄생시키셨을 때 친히 인류의 조상에게 가르쳐 주시고 그 후 대대손손이 말로 전하여 내려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계명이 수천 년간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어져서 불문율(不文律)로 전하여 왔으나, 사람들의 양심이 흐려지고 죄악이 더욱 심해감으로 그것을 글자로 기록하여 사람들이 잊어버리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친히 두 돌 판에 기록하여 모세에게 주시고 그것을 온 이스라엘 백성 앞에 반포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그것을 반포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당신의 계획을 성취시키기 위함이었으니, 이 백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전 세계에 선포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 백성을 세계의 중심지인 팔레스틴 땅에 거주하게 하시고, 그 민족 가운데서 인류의 구주가 탄생하도록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십계명
  그러면 하나님이 친히 두 돌 판에 쓰시고 또 이스라엘 백성에게 반포하셨던 영구불변의 그 사랑의 십계명은 대체 어떠한 내용입니까? 그 요점만을 기록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2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3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4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5

 네 부모를 공경하라….

 6

 살인하지 말지니라.

 7

 간음하지 말지니라.

 8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9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10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출애굽기 20장 3~17절).  


  이 십계명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계명에서 넷째 계명까지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규정한 것이요, 다섯째 계명에서 열째 계명까지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규정한 것입니다.  
  한번은 유대인의 율법사가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려 하였습니다. 율법사가 입을 열어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물으니,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장 37~40절)고 하셨습니다. 이 문답에 분명히 나타난 것같이 하나님의 율법의 정신은 사랑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것과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에 대해 뚜렷이 나타나 있습니다. 즉 처음 네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고, 그 다음 여섯 계명은 이웃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입니다.
 
 
그리스도의 율법
  일반 기독교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구원은 율법을 행함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고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율법은 폐했고 구원은 믿기만 하면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태여 까다로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과연 율법은 폐했으며 무용한 것이 되고 말았을까요?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정말 그 신성한 율법을 폐하시기 위함이었을까요?  
  그렇다면 예수님 자신이 하신 말씀에서 그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태복음 5장 17, 18절).  
  만일 율법이 변경되거나 폐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께서 몸소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변경시킬 수 없는 까닭에 그는 사람의 형체를 취하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계명을 범한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대속자가 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율법의 불변성을 보여주는 가장 큰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율법이 쓸데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이해하기 곤란한 일입니다.
  2천 년 전에 율법이 필요했으면 오늘날에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인간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으며, 달라졌다면 더 악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매일 보도되는 범죄 사실이 얼마나 악질적이며, 얼마나 증가되어 가고 있습니까? 세상이 악할수록 법의 필요는 더욱 절실해집니다. 오늘날 사회의 형편이 이러한즉, 온 세계 인류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생활을 하였다면 이세상은 어찌 되었을까 한번 상상이라도 해볼 만합니다. 거기에는 개인의 행복이 깨어지거나 사회의 안녕 질서가 문란해지거나 할 두려운 범죄 사건이 없을 것이요, 전쟁은 그림자조차도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처럼 율법이 우리의 생활 기준이 되어야 할 시대는 다시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인간의 관계는 마치 레일과 기차의 관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차는 레일 위를 달려야만 안전합니다. 만일 레일에서 벗어나는 날에는 큰 변을 당합니다. 그와 같이 믿는 자들도 또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문제에 대하여 말하기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한일서 5장 1~3절)라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죄 사함을 얻어 거듭남의 경험을 가진 자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결코 무거운 짐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과 반대되는 듯한 구절이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에 관하여 잘못된 생각을 가집니다. 그것은 바울이 기록한 갈라디아서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라디아서 2장 16, 21절).  언뜻 보면, 위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무방한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러할까요? 그렇지 않으면 요한의 말처럼 계명들을 지켜야만 할까요? 우선 이 중요한 문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율법과 복음의 관계 
  믿으면 되지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좋다는 사람들은 이런 성경 구절을 인용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에베소서 2장 8, 9절).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입는 것, 즉 죄에서 구원함을 얻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을 지키거나 선을 행한 대가로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에베소서를 기록한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즉 어찌 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로마서 6장 14, 15절).  
  ‘법 아래 있다’는 말은 법을 지켜야 할 의무 아래 있다는 말이 아니라 법의 정죄 아래 있다는 말이요, ‘은혜 아래 있다’는 말은 죄인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의 사유함을 받은 상태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그리스도께로 나아가 그의 은혜로 사유함을 받고 침례를 받음으로써 그의 받아들이시는바 되어 율법의 정죄 아래 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이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무방할까요? 바울은 분명 그럴 수 없다고 단정하였습니다.  
  가령 한 죄인이 경찰에 붙들렸다고 합시다. 그 때에 그는 국가의 법률 아래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재판을 받고 형의 선고를 받아 복역하다가 국가의 경사로 특사의 은전을 입어 방면되어 나오면, 그는 이제부터는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특사의 은혜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다시 범법 행위를 하여도 무방하겠습니까? 다시 죄를 범하면 또다시 범법자로서 교도소에 갇히게 될 것입니다. 그가 은혜 아래 있는 것은 법을 준수하는 동안뿐입니다. 그리고 그가 범법 행위를 하는 것은 그 특사의 은전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도 이와 똑같습니다. 그 사람이 죄의 사유함을 받는 것은 다시 죄를 범치 않는다는 보증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생애를 삶으로써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자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복음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병립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율법은 거울과 같아서 죄인으로 하여금 자기의 죄를 깨닫고 복음의 필요를 느끼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며, 복음은 죄인으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입을 뿐만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될 수 있는 가능성 곧 율법을 준수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합니다. 그리하여 복음의 능력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완전하게 하고 견고하게 합니다. 이 진리에 대해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로마서 3장 31절)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복음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며,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바 폐지된 율법은 도덕률인 십계명이 아니라 의식에 관한 예전률(禮典律), 즉 예수의 속죄 사업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던 제사 제도에 관한 율법입니다. 참 것이 올 때에 모형이었던 것이 폐지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진 것은 바로 성전 의식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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