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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누가복음 2장 11절).
 
 
사랑의 종교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종교이며,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 요한은 말하기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일서 4장 8절)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경 전체를 다 연구한다면 그 내용을 한마디로 줄여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아닌 일반 종교 특히 우상을 섬기는 자연 종교는 신(神)을 몹시 두렵고 엄한 존재로 인정합니다. 신을 소홀히 하거나 그 행위에 잘못이 있는 사람은 곧 엄한 저주를 받고 벌을 받게 된다고 믿습니다. 즉 우상 숭배자들 사이에는 복을 받기 위하여 신을 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와 그 신자들은 대개 이러한 경향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종교들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은 곧 사랑이시라고 가르치고 우주의 지배 원리가 사랑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가장 밀접한 관계로써 표현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하늘과 땅처럼 먼 거리에 있는 것으로 표현하지 않고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나타냅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과 먼 거리에 있게 되었으나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을 하나님과 결합시키고 아버지와 아들과의 밀접한 관계로 회복시켜 주신다고 가르칩니다. 요한은 이 고상하고 오묘한 뜻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였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요한일서 3장 1, 2절).  
  이 말씀 가운데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에 대한 감격과, 세상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해하지 못함에 대한 애석함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이 나타나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자들을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로 삼으시고 그에게 참된 행복을 주시기 위하여 그 앞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세상이 아무리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를 믿지 않을지라도 저희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큰 특권으로 알고 스스로 만족함과 기쁨을 느낍니다.  
 

지극한 사랑 
  하나님께서 잃어버렸던 우리, 죽고 멸하여질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여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로 삼으시기 위하여, 영원 전부터 같이 계셨던 당신의 외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사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게 한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그 큰 희생과 지극한 사랑에 대하여 무한한 감격을 느끼게 됩니다. 요한은 이 사실을 기록하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장 16절)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불순종함으로 멸망할 자를 구원하여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사랑하는 아들 독생자를 죽음에 내어주신 그 놀라운 사랑,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실제로 성취하신 이가 바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공의를 위한 사랑
  그렇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죽음에 내어주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요? 대저 공의는 사사로운 정에 매이지 아니하고 원칙을 따르는 것입니다. 한번 맺은 언약, 한번 세운 법은 다시 고치지 않는 것이 공의입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세기 2장 17절)고 한 원칙을 어겼으니 인간은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불순종의 씨를 가지고 영원히 산다는 것은 불행을 영원히 지속시키는 것입니다. 죄의 근성은 그 후손들에게도 유전되어 그들도 역시 죄를 범하고, 죄인 아닌 자는 한 사람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온 세상은 오늘날 보는 바와 같이 죄악으로 가득 차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온 인류는 멸망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만드신 인류, 영원히 행복을 누리며 사랑의 대상자가 되어 주기를 기대했던 그 인류가 멸망하는 것을 그대로 두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죄값을 대신 갚고 인류의 죄의 근성을 근본적으로 고쳐주셔서 인류로 하여금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곧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우리 인류의 심령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공의를 살리고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나타내신 오묘한 진리입니다.
 

유일한 방법
  인류를 구원하는 데는 오직 이 길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쓰라린 경험을 맛보신 것입니다. 어찌하여 이 길밖에 없었을까요? 사람으로서는 사람의 죄를 대신 질자가 없습니다. 이는 죄인 아닌 자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한 사람으로서 전 인류의 죄를 담당할 자도 없습니다. 이는 전 인류의 가치와 대등한 가치를 지닌 자가 인류 중에는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공자나 석가모니나 모하메드나 소크라테스와 같이 위대한 성인일지라도, 그들 역시 인류의 조상 아담의 후예로서, 모태로부터 죄의 유전과 품성을 받아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무리 선(善)을 행하였다 할지라도 그 조상으로부터 유전된 죄의 운명을 면치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은 보통 인간과 다르십니다. 그분은 신성(神性)으로서 인성(人性)을 쓰신 것입니다. 곧 그는 하나님의 성자(聖者)로서 이 세상에 탄생하셨습니다. 그는 곧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손으로 우리 인간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 밖에는 우리 인간의 잘못된 심성을 바로잡아 줄 이가 없으며, 그분 이외에는 우리 죄를 대속해 줄 이가 없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장 6~8절).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로마서 1장 15~17절). 
  그런 까닭에, 사도 베드로는 예루살렘의 수천 명의 대중 앞에서 큰소리로 담대히 이렇게 외쳤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사도행전 4장 12절).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우리를 죄와 죄의 결과에서 건져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린바 된 인류를 위하여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인성을 쓰고 세상에 오시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공부해 봅시다.  
 

처녀 마리아의 잉태
  아시아의 맨 서쪽 지중해 연안에 팔레스틴이란 지방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에 이 지방에 유대 나라가 있었고, 그 나라의 북쪽 갈릴리 지방에 나사렛이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 ‘요셉’이라는 목수가 살았는데, 그는 같은 마을에 사는 ‘마리아’라는 처녀와 약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요셉에게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이 사연이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요셉과 청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태복음 1장 18~20절).
  여기에 자세한 말이 기록되지는 않았으나, 천사는 몰론 요셉이 이해할 만큼 마리아의 잉태한 바는 하나님이 일찍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 곧 이스라엘 민족이 오랫동안 바라던 메시야임을 분명히 인식시켰을 것이요, 또는 이사야가 이미 7백 년 전에 예언한 바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장 14절)는 말씀을 상기시켜 그로 의심을 버리게 하고 메시야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했을 것입니다(‘메시야’는 히브리어로, 헬라어의 ‘그리스도’와 같은 말입니다. 즉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란 뜻이며, 유대인들이 흔히 구주라는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이란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천사가 계속하여 요셉에게 이르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태복음 1장 21절)고 하였습니다(예수라는 말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에 요셉은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마리아 데려오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처녀 마리아에게는 천사가 나타나 이러한 기별을 전하였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누가복음 1장 28, 31절).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누가복음 1장 34, 35절).  
  마리아도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두려워했으나 천사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이스라엘 온 민족이 바라고 기다리던 메시야가 자기 몸에서 나시겠다는 귀한 허락을 믿게 되어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누가복음 1장 38절) 하고 공손히 그 신앙을 표명하였습니다. 현대의 과학으로는, 남자를 모르는 처녀가 잉태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이해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 가운데는 이러한 초과학적 기적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실에 있어서도 해명할 수 없는 기괴한 일들이 허다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명할 수 없는 일은 모두 부인해야만 할까요? 부인한다고 그것이 사실을 바로 판단하는 것이 될까요?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무엇이나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다”. (누가복음 1장 37절). 우리는 차라리 다윗과 같이 “이 지식이 네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시편 139편 6절)라고 겸손히 고백함이 현명한 태도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유대 나라 베들레헴에서 호적 조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던 때였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에 사는 젊은 부부 요셉과 마리아는 새로 호적을 하기 위하여 본적지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손님이 너무 많이 모여들어서 여관은 말할 것도 없고 온 집과 마을이 모두 사람으로 차고 넘쳤습니다. 이 젊은 부부는 머무를 곳을 얻지 못하여 어떤 집 외양간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밤에 마리아는 산기가 있어 아기 예수를 낳고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습니다. 그 때에 베들레헴 성 밖 언덕에는 양떼를 지키며 밤을 보내는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세상의 어지러움을 탄식하며, 어서 메시야가 오셔서 세상을 바로잡아 주시기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한 천사가 타나나 그 빛난 광채가 두루 비치니 저들이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누가복음 2장 10~12절)고 하였습니다.  
  이런 기별과 함께 천사들은 넓은 들과 산골짜기를 통하여 멀리 퍼진 이 찬미 소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이르는 축복과 평화를 노래한 것입니다. 과연 예수를 받아들이는 자들의 마음 가운데는 평안과 화평이 있습니다. 그들의 가정이나 사회에도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다툼이 자취를 감추고 오직 화평만 있게 될 것이니, 예수님이야말로 ‘평화의 왕’이십니다.
 목자들은 천사의 지시대로 베들레헴 성으로 돌아가, 강보에 싸서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찾아보고 그에게 공손히 절하였습니다.  
또 먼 동방 나라에서는 박사들이 이상한 별을 보고 구주가 나실 것을 알고 유대 나라 베들레헴으로 찾아와, 구주로 나신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황금과 유황과 몰약 등 매우 값진 예물을 드리고 갔습니다. 그들은 옛글 가운데서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민수기 24장 17절)라는 말씀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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